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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이드(No-Side)정신

노-사이드(No-Side)정신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에서 아주 독특한 전통과 경기 규정을 갖고 있는 유니크한 스포츠가 있다. 바로 럭비풋볼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헌장 26조 아마추어 규정을 크게 수정하여 일부종목의 프로 참가를 허용하고 올림픽 표장인 오륜(Five Rings) 로고로써 마케팅 회사인 ISL을 창립하는 등 상업성이 농후한 시책을 적극 전개하는 추세에 따라, 이제 순수한 의미로서의 아마추어 스포츠가 사라진 가운데에서도 럭비풋볼만은 이 모든 흐름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IOC 헌장에 버젓이 승인 종목으로 포함돼 있었던 것을 스스로마다하고 오직 럭비풋볼만이 갖고 있는 전통이 희석될까 봐 아직까지 국제연맹조차 구성하지 않고 있는, 어떻게 보면 고루하고 또 어떻게 보면 고집스러우리만치 순수성을 고집하는 이 종목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고전적인 고독한 스포츠라 할 만하다.

자기 성밖을 좀처럼 뛰쳐 나오지 않으려는 이 종목은 그럴 만한 전통과 가치체계가 있었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전통과 이를 말해 주는 독특한 경기규정과 함께 숱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기도 하다.

19세기 말엽 유럽은 보불전쟁, 크리미아전쟁으로 온통내일을 점칠 수 없는 불안과 혼란에 빠져 있었고, 소수이긴 하나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양식있는 목소리도 자못 높아지기 시작한 시대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근대올림픽 부활자인 쿠베르탕 남작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의 방향타 잃은 방황이 나약하고 퇴폐적 성향이 짙은 청소년을 낳았고 그 책임은 청소년 교육의 잘못에 있다고 믿은 쿠베르탕은 이 해답을 영국에서 구하고자 런던에 갔다.

그 당시 영국은 유니온잭(Union Jack)이 5대양 6대주에서 해질 줄 모르는 위세를 떨치고 있었으니 만큼 그럴 만한 일이었다. 영국에 간 쿠베르탕이 명문이었던 스쿨의 교정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것은 바로 럭비풋볼이었다.

이곳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그로 하여금 귀국 후 프랑스 청소년 교육의 개혁을 부르짖게 하였고, 인류의 불안한 미래를 고대 올림픽 제전경기를 현대에 부활하여 스포츠의 고리로써 전인류에 평화와 공영을 자리잡게 하고자 염원하였다.

그리하여 1896년 6월 23일 솔본느대학 강당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부활된 제1회 올림픽이 고대 제전경기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다.

물론 당시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고대 그리스의 유적을 발굴하는데 열을 올린 소산으로 그 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파묻혀 있던 올림푸스 유적이 발굴됨으로서 올림픽 제전경기가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을 때였으니, 이에 대한 눈길이 쏠리게 되었다는 시대적 연관성도 있다 하겠다.

어찌 되었든 쿠베르탕 남작은 분명 예지의 선각자였다.

당연히 럭비풋볼은 올림픽 종목에 포함됐다. 그러나 그 당시의 교통수단이나 통신수단은 유럽 각국과 미국 등에 한정된 소수 국가의 잔치로밖에 될 수 없는 제약이 있었고, 제1회 대회가 그리스 황태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당시로서는 꽤나 성공적인 대회를 치를 수 있었음에 반해, 2회 대회부터는 개최 경비 문제를 뒷받침해 주는 각국 정부의 후원도 없어 기껏해야 만국박람회의 부대행사로 헤맬 수밖에 없었으니, 발족 당시의 높은 이상과 희망은 빛 바랜 것이 되고 만 것이었다.

럭비풋볼로서는 자존심과 긍지에 큰 상처를 입고 실시 종목에서 스스로 빠져나가 올림픽을 외면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물론 올림픽은 그 후 규모면에서나 호응도에 있어 큰 발전과 변천을 보였다. 올림픽과 인연을 끊은 럭비는 상대적으로 확산면에서는 큰 발전이 없었고, 여기에 국제연맹 조직조차 마다하는 고집스러운 전통으로 어느 면에서는 안으로 움추려 드는 듯한 외로운 스포츠, 그러면서도 순수성을 더욱 중히 여기는 스포츠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전통과 함께 경기 규칙에도 아주 독특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노-사이드(No-Side)이다. 용어 자체가 갖는 의미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라는 것으로, 일반적 속성으로 보아서는 유별난 규정이라 하겠는데 바로 이 점에 묘미가 있다.

경기 규칙 제5조 「토스 및 경기 시간」에서는 “노사이드라함은 경기의 끝남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제6조 심판 및 선상 레퍼리 (referee)와 저지(Judge) 주의 사항 II에서는 “레퍼리는 경기 시간이 끝나기 전이라도 어떤 이유에 의하여 경기를 계속할 수 없든가, 또는 경기의 속행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였을 경우에는 노-사이드로 할 권한이 있다.” 라고 되어 있다.

즉, 경기의 휴지를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조항이 다른 스포츠와 다른 점이다. 럭비풋볼이 다른 스포츠와 달리 신체의 접촉과 충돌이 유난히도 격렬한 스포츠여서, 항상 감정의 폭발과 분쟁 발생의 개연성이 높은 것만은 쉽사리 이해가 간다. 그러니 적절한 판단에서 이를 제지하지 않으면 끝내는 난투극까지 일어날 수 있게 됨으로써, 결국은 스포츠의 가치 그 자체가 무너지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할 일만은 막자고 하는 제도라고 해석된다.

사실 56회 체전(1975년) 때 고교부에서 경기가 과열되어 더 이상의 경기 속행이 곤란하다고 판단한 레퍼리가 “노사이드”를 선언하여 경기를 휴지시킨 일이 있다. 전세는 홈팀인 대구상고가 몰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 레퍼리의 노-사이드 선언이 개최지 팀을 두둔한 것이 아니냐는 거센 고함과 대회 규정에 어긋난다는 항의가 일어났다. 그러나 대회규정은 일반적 원칙과 가이드 라인일 뿐이지, 개개 경기단체의 전관 사항인 경기 규칙 적용까지를 간섭할 수 없다 하여 노-사이드 선언이 정당하다는 결정에 그 당시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었으나, 이 규정이 바로 럭비풋볼이 자랑하는 정신적 받침대인 것을 안 것은 후에 더 공부한 뒤 안 일이다.

스포츠란 ‘페어플레이 정신’이 그 생명이다. 또한 스킨쉽을 통하여 인간과 인간의 교류로서 이해와 친선을 꾀하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다. 그러기에 승리 그 자체가 제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이 바르지 못했을 때에는 가치없는 것이 된다고 하는 것이 기저를 이루는 정신이어야만 한다.

근자에 와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 놓고 보자는 풍조가 세계 스포츠계에 간혹 눈에 띄게 되었다.

이럴수록 스포츠가 스포츠로서 사랑을 받고 보람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약속인 ‘룰’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다른 장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룰’은 스포츠의 최후의 보루요, 생명이다. 간혹 스포츠란 엑사이트한 것이니 만큼 다소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엑사이트하고 충돌발생의 가능성이 큰 본질적 특성이 있으니 만큼 그 발생의 요인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더 강조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면에서 이노사이드는 아주 적절한 안전판이라 할 수 있다.

비단 럭비풋볼만이 아니고 그 기본 정신은 다른 스포츠, 아니 모든 사물의 대결에 있어서 잠시 숨을 돌리고 서로를 다시 생각케 하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원용해 볼 만한 정신이라고 믿어진다. 날로 거칠어지고 흑백논리만이 무성해진 사회전반에서 말이다.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니 다시 한 번 룰에 따라, 아니 사회상규와 건전한 상식의 바탕 위에서 이야기해 보자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요즈음이다.

얼마나 멋있는 일이냐. 여유를 갖는 사회가 말이다.

 

참조 :  경기 유니폼 상업주의로부터의 오염

“노-사이드(No-Side)정신”에 대한 2개의 응답

  1. […] 참조 : 노-사이드(No-Side)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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