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Doping)과 개소주
이제 올림픽의 장래와 스포츠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 도핑, 즉 약물 복용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주의 블럭이 붕괴하기 전까지만 해도 구 소련에서 시작한 도핑은 세계 스포츠계에 전염병처럼 확산돼 나갔고, 이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자못 높아가기만 하였다.
소련연방 붕괴 전, 일본의 모 일간지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소련의 스포츠선수 4백5십만 명 중에서 약물을 상용하는 선수가 10만 명에 이르렀다 하니 가공할 만한 일이고, 1960년 이전에 이미 약물복용의 해독에 의해 40세를 전후로 사망한 사람이 150명 선이었다 하니 이 해독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러면 이렇듯 무서운 해독을 가져다 주는 약물을 왜 굳이 복용하는 것일까. 반문할 필요도 없이 약물의 일시적인 효과를 얻어 경기에서 이겨보자는 욕망에서임은 두말 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스포츠를 국가가 관리하여 화려한 국제무대에서 자국 선수의 우승을 통해 국위를 드높이려는 정책, 즉 ‘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 (State Amateurism)’을 추진하던 당시의 사회주의 국가권에서는 당연한 결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약물 복용까지 등장하였고, 경제적인 보상과 사회적 신분의 향상을 바라는 선수들이 약물의 해독에는 애써 귀를 막고 일시적인 효과에만 몰려들었음은 당시의 이들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제도나 환경의 필연적 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이 약물의 해독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발견되기도 힘들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목청을 돋우어이의 해독을 외쳐대고 의무위원회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지혜를 짜내어 약물 반응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약물 복용의 반응검사 방법이 발달하고, 이의 해독은 필경, 스포츠의 장래를 뒤흔드는 위험한 해독이라고 보고 선수 자격의 박탈에 이미 수립한 기록이나 성적을 몰수하는 강경조치가 취해지자, 소련은 이의 대응책으로 이번에는 약물해독제 (Anti Dope)를 투여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서울올림픽 때의 파다한 소문이었다.
이의 노하우(Know How)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 이 또한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올림픽 때 인천 앞바다에 소련의 대형선박이 정박하고 유명 선수들이 번질나게 출입한 것이 바로 해독제를 주사하거나 복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밀아닌 비밀이었다.
메달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무서운 마력을 갖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도핑의 해독은 선수 개인의 안전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다.
공정성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는 스포츠계의 가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붕괴하는 데에 더욱 심각성이 있다.
누구나 똑같은 조건하에서 힘과 기를 겨루는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약물의 힘에 의해, 즉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이겼다면 이는 이미 스포츠가 아니라 사술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현행 금지 약물수만 하여도 450개선이고 이는 해마다 증가 일로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근육강화제와 흥분제 계열인 ‘아나보릭 스테로이드’ 계만 하여도 20여 가지에 이르는데 원흉은 바로 이 스테로이드계라 한다. 물론 마약도 있고 별의별 약품이 있기는 한데, 복용하려는 측과 이를 금지하려는 측이 서로 지혜를 짜내어 대결하다가 결국 450여 종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사람의 끝없는 욕망과 집념이란 참으로 무섭다 아니할 수 없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약물 복용을 엄히 규제하고 검사결과가 양성으로 나올 경우는 가차없이 추방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는데, 그 좋은 예가 90년 북경 아시아경기 출발 직전 모 종목의 두 사람의 여자 선수가 이에 저촉되어 제명된 일이 기억난다.
선수 본인이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불시에 실시하는 약물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타나면 아무리 우수한 선수라 해도 추방해 버리는 ‘읍참마속’인 셈이다.
후일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 불운의 두 선수는 의식적으로 약물을 복용한 것이 아니고 몸에 좋고 근력을 보강해 준다고 해서 이른바 ‘개소주’를 먹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개소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중 개소주 집에서 자기 집의 개소주의 효과가 단시일내에 반짝 나타날 수 있도록 손에 넣기 쉬운 흥분제인 ‘아나보릭 스테로이드’ 계의 약품을 투여해서 판매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위험의 개연성을 염려해서 태릉 선수촌에서는 주말 외출에서 귀촌할 때까지 일체의 보약이나 심지어 감기약의 복용까지를 금지하고 있다.
시중 약국에서 조제해 주는 감기약에는 근육통을 완화시켜 주는 스테로이드계, 부신피질호르몬, 기관지 모세혈관 확장제 등이 곧잘 조제되니, 이를 복용하고 경기 현장에 출발한 후 이들 약물이 몸 밖으로 배설되기 전에 검사를 받는다면 양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이들 약품이 몸 밖으로 완전히 배설되려면 짧으면 1주일, 길면 6개월 이상 소요된다고 하며, 더욱 무서운 일은 약물을 상용하는 경우에는 약물의 체내축적이 이루어져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오는 것은 물론 생명까지를 위협하는 해독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날에는 국제정치와 인종, 종교문제가 올림픽을 괴롭혀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 약물 복용이 넘어야 할 크나큰 산이요 장벽이다.
상업주의의 발호는 이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것이 되었고 국제올림픽위원회 자신이 수익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으니 논외로 치자.
그러나 이 도핑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절대 절명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메달이 뭐길래 자기 생명을 담보로까지 하면서 그 무서운 약물을 복용하는 것인지,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자못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참조 : 노-사이드(No-Side)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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